안녕하세요, 미전실형입니다.
수백억, 수천억 단위의 M&A 딜이 오가는 회계법인 딜본부(FAS). 이곳에 갓 입사한 생초짜 인턴이나 1년 차 신입은 출근하자마자 무슨 일을 할까요?
영화에서처럼 회의실에 앉아 멋지게 M&A 딜 구조를 짜고, 거창하게 DCF(현금흐름할인법) 모델링을 돌릴 것이라 기대했다면 큰 오산입니다. 파트너와 시니어들이 이제 막 들어온 주니어에게 기대하는 역할, 그리고 진짜로 바라는 '결정적 디테일'은 완전히 다른 곳에 있습니다.
오늘은 면접장에서 "이 친구 현업 좀 아네?"라는 찬사를 받고, 입사 후에는 선배들이 앞다투어 자기 프로젝트로 데려가려는 '에이스'로 찍히는 비결, 즉 FAS 주니어의 4대 핵심 업무를 공개합니다.
1. Key-in (데이터 입력): 딜의 생사를 가르는 '0' 하나의 무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주니어들이 가장 많이 실수하는 업무, 바로 Key-in(키인)입니다. 타겟 기업이나 관련 회사의 재무제표(PDF, Word, 혹은 흐릿한 하드카피 인쇄물)를 보고, 그 숫자들을 엑셀에 '오탈자 없이' 그대로 집어넣는 작업입니다.
"단순 타이핑 알바 아닌가요?"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숫자는 향후 수천억 원짜리 가치평가(Valuation) 모델의 가장 기초 데이터(Raw Data)가 됩니다.
매출액이나 비용에서 '0' 하나를 덜 치거나, 단위(백만 원 vs 천 원)를 헷갈려서 잘못 입력하면, 그 위에 쌓아 올린 모든 재무 모델링의 결과값이 쓰레기가 됩니다. 시니어들이 주니어를 평가하는 첫 번째 기준은 화려한 엑셀 스킬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신뢰도입니다.
"이 친구가 친 숫자는 내가 검증 없이 그대로 모델에 써도 되는가?"
키인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에이스 주니어로 가는 첫 관문입니다.
2. Peer Group (유사기업/경쟁사) 추출: AI가 뽑아주는 시대, 당신의 무기는 '논리(Rationale)'
타겟 회사의 가치를 평가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 중 하나가 시장접근법(상장된 유사기업들의 배수를 비교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주니어에게 떨어지는 미션이 바로 'Peer Group 산출'입니다. 블룸버그(Bloomberg) 터미널이나 Capital IQ(캐피탈 IQ) 같은 금융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타겟사와 사업 모델이 가장 유사한 국내외 상장사 리스트를 뽑아냅니다.
요즘은 AI가 워낙 발달해서 제미나이, 챗GPT, 클로드 같은 생성형 AI에 "이 타겟 회사의 경쟁사 리스트 뽑아줘"라고 치면 1분 만에 그럴싸한 리스트가 튀어나오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보고 자리에 들어가서 고객사 임원이나 깐깐한 파트너에게 "AI가 이렇게 뽑아줬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결국 주니어의 진짜 역량은 리스트업 자체가 아니라, 그 리스트를 방어할 '논리(Rationale)'를 구축하는 데서 갈립니다. 어떠한 기준으로 산업 섹터를 세분화했는지. 사업 모델이 비슷해 보이는 A회사는 포함하면서, B회사는 왜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제외했는지. 선정된 유사 경쟁사들은 현재 시장에서 어떤 특이점이나 리스크를 안고 있는지.
단순히 AI나 검색기가 던져준 리스트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본인이 픽업한 회사들이 왜 타겟 회사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가장 적정한 비교 대상인지 완벽한 이유를 만들고 상사와 고객사를 논리적으로 설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단순 검색 알바와 몸값 높은 FAS 주니어를 가르는 핵심 차이입니다.
3. WACC (가중평균자본비용) 산출: 템플릿과의 싸움
재무관리를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분들이라면 WACC라는 단어에 식은땀이 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학부 때처럼 백지에서 복잡한 수식을 직접 유도하지는 않습니다. 법인마다 이미 훌륭하게 짜인 엑셀 템플릿이 존재합니다.
주니어의 역할은 앞서 2번에서 산출한 Target사 및 Peer Group 리스트를 바탕으로, 블룸버그나 자본시장 데이터에서 무위험수익률(Risk-free rate), 베타(Beta), 시장위험프리미엄(ERP) 등의 Raw Data를 정확히 뽑아내어 템플릿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왜 이 베타 값을 썼는지, 왜 이 기간의 수익률을 적용했는지 시니어에게 명확한 '근거(Logic)'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산업 리서치 (Industry Research): 보고서의 뼈대 잡기
Valuation 보고서나 IM(투자설명서)의 앞단에는 항상 타겟 회사가 속한 산업에 대한 분석(Market Overview)이 들어갑니다. 시장 규모(Market Size)는 얼마나 되는지, 성장 동인(Key Drivers)은 무엇인지, 최근 트렌드와 규제 이슈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리서치하는 역할도 주니어의 몫입니다.
구글링과 각종 증권사 리포트, 유료 산업 보고서들을 며칠 밤을 새우며 뒤져야 합니다. 여기서 일 잘하는 주니어는 단순히 찾은 자료를 '복붙'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십 페이지의 영문 리포트를 핵심만 요약하여 시니어가 보고서 장표로 바로 옮길 수 있게끔 구조화해서 전달합니다.
맺음말: "기본기"가 곧 최고의 무기입니다
단순 숫자 키인, 경쟁사 추출과 논리 방어, 그리고 리서치. 어떻게 보면 하찮아 보이고 지루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네 가지 업무는 모든 M&A 딜의 가장 밑바탕을 지탱하는 주춧돌입니다.
선배들은 주니어에게 당장 수백억의 가치를 창출할 거창한 인사이트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지루하고 고된 데이터 작업 속에서도 끝까지 숫자의 정합성을 맞추고, 본인의 산출물에 대한 꼼꼼한 방어 논리를 세워내는 '기본기'를 봅니다. 이 기본기를 완벽하게 증명해 낼 때, 비로소 시니어들은 여러분에게 복잡한 M&A 딜 구조 설계와 진짜 모델링의 기회를 넘겨주기 시작할 것입니다.
FAS 입사를 꿈꾸는 분들이라면, 면접장에서 거창한 전략보다 이 네 가지 실무에 대한 이해도와 끈기를 어필해 보시기 바랍니다.
👉 [다음 편 예고: FAS 이직 전, 컨설팅 시절 겪었던 staff-loan 썰]
FAS 1년 차의 현실을 다룬 이번 글, 어떠셨나요? 사실 제 커리어의 시작은 FAS가 아닌 '전략 컨설팅'이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시계를 조금 앞으로 돌려, 제가 FAS로 적을 옮기기 전 전략 컨설턴트 시절에 겪었던 아주 신선하고도 아찔했던 경험, 바로 '스태프 론(Staff Loan)' 투입 스토리를 풀어보려 합니다.
"미전실형, 다음 주에 고객사랑 면접 있습니다. 영어 면접 준비하세요."
보통 컨설팅 프로젝트 투입은 각 컨설턴트들의 이력서를 담은 제안서를 통해 프로젝트가 수임되는 편입니다. 그래서 투입 전에 실무자가 고객사와 직접 면접을 보는 케이스는 거의 없죠. 하지만 제가 컨설팅에 몸담으면서 겪었던 딱 한 번의 이 경험, 고객사 팀장님 및 임원진 총 다섯 분과 마주했던 다대일 영어 면접은 정말 특이하고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본 소속을 떠나 완전히 낯선 전장에 차출되는 스태프 론, 그리고 그 이례적인 영어 면접을 거쳐 투입되었던 벤치마킹 전략 프로젝트의 생생한 썰! 도대체 전략 컨설턴트의 하루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주 이해하기 쉽게 스토리로 풀어드리겠습니다.
숫자를 다루는 FAS와는 또 다른, '논리와 전략'을 쥐어짜 내는 컨설팅 펌의 치열한 하루.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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